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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별 가수 노래 04 무명전설 레드애플 가방 하나 들고 한국으로 건너오다

by 노래 노래~ 2026.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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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탄생과 성장 2편 · 6개 국어 3편 · 치대와의 약속 4편 · 한국으로 5편 · 데뷔 전 방황 ···
장한별 이야기 · 04

가방 하나 들고
한국으로 건너오다

아버지의 반대, 어머니의 허락, 그리고 낯선 땅 한국
연습생 장한별의 외롭고도 뜨거웠던 첫 걸음

 

가수 장한별 - 인스타그램

 

https://cafe.naver.com/janghanbyeol77 장한별 가수 공식 팬카페

장한별 공식 팬카페
장한별가수

 

 
호주 브리즈번의 따뜻한 햇살 아래 살던 청년이 차가운 한국의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아는 사람도 없고, 보장도 없고, 오직 꿈 하나만 있었다. 아버지는 반대했고, 어머니만 조용히 허락해줬다. 가방 하나를 들고 비행기에 오른 그날, 장한별의 가수 인생이 진짜로 시작됐다.

 

장한별 가수- 인스타그램
BOARDING PASS · ONE WAY
BNE
Brisbane, Australia
✈ ─────
ICN
Seoul, Korea
PASSENGER
JANG HANBYUL
PURPOSE
BECOME A SINGER
RETURN
OPEN (꿈을 이룬 뒤)

✈️ 아버지의 반대, 어머니의 허락

한국행을 결심했을 때, 가족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아버지는 반대했다. 명문대 치의학과까지 합격한 아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확실한 가수의 길로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반대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만큼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허락해 주셨다. 장한별은 훗날 인터뷰에서 "운도 좋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 한마디에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그 결단이 얼마나 쉽지 않았는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

아버지는 반대를 하셨었지만 다행히 어머니는 허락해주셨다. 운도 좋았던 것 같다. 부모님의 반대를 이겨내고 가수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소속사마다 문을 두드리며 미팅과 오디션을 이어갔고 데뷔 준비도 했지만, 여러 차례 무산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 장한별, OSEN 인터뷰 및 MBN 무명전설 일문일답 중

 

장한별 그대는 나의 별이오
장한별 그대는 나의 별이오

 낯선 땅, 서울의 연습실

장한별은 15세 무렵 한국으로 건너와 연습생 시절을 거쳤다. 호주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였다. 한국어는 집에서 써왔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업계'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연예기획사의 오디션 문화, 연습생들 사이의 경쟁, 그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는 사람도 없는 한국에서 혼자 소속사의 문을 두드리고, 오디션을 보고, 미팅을 이어갔다. 언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 가요계의 시스템과 관행, 그리고 수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무명전설 장한별 - 장한별 인스타그램

 

연습생 시절의 현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언제나 길고 힘든 준비의 시간이 있다. 장한별의 연습생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직접 밝힌 그 시간들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
소속사마다 문을 두드렸다
여러 기획사를 찾아다니며 미팅 요청과 오디션을 이어갔다. 거절도, 무산도 반복됐다.
🔄
소속사를 여러 번 옮겼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소속사를 옮겨 다니며 데뷔만을 바라보던 긴 시간이 이어졌다.
💔
데뷔 준비가 여러 번 무산됐다
데뷔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되는 일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야 했다.
기다림이 길어졌다
데뷔만 바라보며 기다리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의심도 찾아왔다.

 흔들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순탄하지 않은 연습생 시절, 장한별도 흔들렸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 고백이 오히려 그를 더 진정성 있는 아티스트로 보이게 한다.

"

그동안은 '난 잘 될 거야'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계속 도전을 이어오는데도 '이 길이 맞는 걸까' 고민도 많았고, 가수라는 명분 자체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특히 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는 '나는 과연 가수인가'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 장한별, MBN 무명전설 일문일답 중

그러나 그 고백에는 반드시 뒤따르는 말이 있었다.

"

그래도 노래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어요. 결국 저에게는 노래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고,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계속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 장한별, MBN 무명전설 일문일답 중

 

무명전설 장한별

 

무명전설 장한별

한국 입국 후 데뷔까지의 여정

 
치대 휴학 직후
한국 입국.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브리즈번을 떠나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는 사람도, 보장도 없는 한국에서의 새 출발이었다.
 
연습생 시절
소속사 탐색과 오디션 도전. 여러 소속사의 문을 두드리고, 오디션을 보고, 미팅을 이어갔다. 데뷔 준비가 무산되는 일도 반복됐고, 소속사를 옮겨 다니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치대 중퇴 공식화
3년의 휴학 기간 종료, 공식 중퇴. 학교로 돌아갈 다리가 사라지며 음악의 길만 남았다. 오히려 그 순간이 더 단단한 결심을 만들어줬다.
 
2011년 11월
LEDApple(레드애플) 데뷔. 미니앨범 CODA를 통해 그룹의 리더이자 메인보컬, 리드래퍼로 마침내 한국 가요계에 공식 데뷔했다. 긴 기다림 끝에 얻은 첫 무대였다.
✦ 장한별이 말하는 그 시절

지금 돌아보면 제 길이 한 번도 순탄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번 선택한 길은 끝까지 해내는 성격이라, 가수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거쳐 지금의 저로 성장했고, 이번 무명전설 무대 역시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이 지금의 노래를 만들었다

연습생 시절의 긴 기다림과 좌절이 결국 장한별을 더 깊은 아티스트로 만들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만약 순탄하게 인생을 살아왔고 좋은 경험들만 하고 왔다면 지금의 노래에서는 그런 감정들이 표현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브리즈번에서 서울로 날아온 그 청년의 가방 속에는 옷가지보다 더 무거운 것이 담겨 있었다. 부모님과의 약속, 어머니의 허락, 아버지를 향한 미안함, 그리고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 무명전설 무대 위의 장한별을 만들어냈다.

✦ 4편을 관통하는 장한별의 세 가지 키워드
  • 용기 —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인생을 건 용기였다
  • 끈기 — 소속사를 옮겨 다니고, 데뷔가 무산되는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 결국 데뷔로 이어졌다
  • 진정성 — 그 모든 과정이 지금 그의 노래에 담긴 감정의 깊이를 만들어냈다는 것, 그것이 장한별이라는 가수의 진짜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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